자경문(自警文) 17
마음 속 사랑 여읜 이를 사문(沙門)
세속 생각 않는 것이 출가(出家)
其八은 莫交世俗하야 令他憎嫉이어다
離心中愛曰沙門이요 不戀世俗曰出家니라 旣能割愛揮人世어니 復何白衣로 結黨遊리요 愛戀世俗은 爲이니 은 由來非道心이니라 人情이 濃厚하면 道心疎니 冷却人情永不顧니라 若欲不負出家志인댄 須向名山窮妙旨호되 一衣一鉢로 絶人情하고 飢飽에 無心하면 道自高니라 頌曰
爲他爲己 雖微善이나 皆是輪廻 生死因이니라
願入松風 蘿月下하야 長觀無漏 祖師禪이어다
여덟째, 세속을 교통하여 타인이 미워하게 하지 말지니라.
마음 속에 사랑을 여읜 것을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고 하느니라. 이미 능히 사랑을 끊고 인간 세상을 뿌리쳤거니, 다시 어찌 백의(白衣)들과 결당하여 놀겠는가? 세속을 연연함은 도철(??)이라 하니, 〈도철〉은 본디부터 도심(道心)이 없느니라.
인정이 짙으면 도심이 성기나니, 인정을 차갑게 하여 영영 돌아보지 말지니라. 만일 출가의 뜻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명산을 향하여 가서 묘한 이치를 궁구하되, 가사 한 벌 발우 하나로 인정을 끊어버리고, 배부름과 고픔에 무심하면 도가 자연히 높아지니라. 송하여 이르되,
나와 남을 위한 일 착하다 해도 생사 윤회의 원인 되나니
솔바람 칡덩굴 달빛 아래서 고요히 화두를 들고 참선하게나.
도철 유래 비도심( 由來 非道心)
도철은 용과 같이 상상의 탐욕스런 동물의 하나.
일의일발(一衣一鉢)
보통은 삼의일발(三衣一鉢)이란 말을 쓴다. 대의, 중의, 소의 등 세 벌 출가복장과 공양그릇인 발우 하나를 가리킨다.
위타위기 수미선(爲他爲己 雖微善) 개시윤회 생사인(皆是輪廻 生死因)
불교의 근본정신은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이다. 육조단경에서 육조 혜능 스님의 최초 사자후로 기록되어 있다.
(1) 선악의 두 상대 개념에서 벗어난 절대의 경지를 가리킨다.
(2) 선악 이견(善惡二見)을 뛰어 넘어 절대 유일의 생각에 머물러 있음을 가리킨다. 불사 선악자(不思善惡者) 선악을 생각하지 말라는 건 불공 망선악위(不空亡善惡謂) 선악에 대해서 흐리멍텅하라는 건 아니다.
오달 선악 실성(悟達善惡實性) 선악의 실성을 깨닫고 나서도 즉기성 유불사(則其性唯不思) 그 깨달음에 생각지 않나니 선악본비물고(善惡本非物故) 선악은 본래 집착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기체불사(其體不思) 선악 자체에 대해선 아예 생각을 두지 말라.
절대선 절대악(絶對善 絶對惡)의 뜻의 풀이로, 지월 혜인 스님(指月慧印, 日僧, 1689 1764)의 좌선용심 기불능어(坐禪用心記不能語)에 나오는 구절이다.
(3) 무문관(無門關, 第二十三則) 구절은 다음과 같다.
육조 스님이 대유령에서 명(明)상좌의 추격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발우와 가사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육조 스님이 숨자, 명 상좌는 발우와 가사를 가져가려고 애를 썼으나 불가능했다. 바위에 붙어서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홀연 정신을 차린 명 상좌는 마음을 돌려 법문을 청한다.
아래구법(我來求法) 제가 여기 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함이지 비위의야(非爲衣也) 가사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원행자 개시(願行者開示) 원컨대 행자는 깨우침을 열어주십시오.
이때 육조 스님이 입을 연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정여마시(正與 時) 바로 이런 때에나개시 명 상좌 본래면목(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어떤 것이 명 상좌의 본래면목일꼬?
이 말끝에 바로 명 상좌는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