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10-08-17 11:44
20. 달마의 안심론(安心論)-3.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보라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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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달마의 안심론(安心論)-3.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보라

당시의 부자들은 목욕물도 보통의 물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미 향내가 나는 물이었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고 있고, 한쪽에서는 욕조에서 사치스러운 목욕을 하고 있다. 수천 송이의 장미꽃이 그들의 목욕물을 위해서 꺾어졌다. 이 사람들의 눈에는 거지나 승려나 방랑자나 모두 똑같이 보인다. 단지 승려들에게 목욕탕을 빌려주면 이 세상에서 한량없는 축복을 받는다고 들었기 때문에 억지로 그들은 목욕탕을 제공할 것이다. 부처는 사업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고 그의 말은 완전히 들어맞았다. 그러나 달마를 추종하는 제자들은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기록했다.

승려들의 목욕이란 말은 육체를 씻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대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씻을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만져질 수도 없다. 오직 만져지는 것만이 씻을 수 있다. 그대의 몸은 물로 씻을 수 있지만, 영혼은 씻을 수 없다. 그대의 옷은 세탁할 수 있지만, 존재는 세탁할 수 없다.

부처는 마하비라에 비하면 매우 관용적인 사람이다. 마하비라는 정말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완전히 무사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연꽃으로 비유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연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연약하며 우아하다. 그는 자신의 승려들에게 음식과 약을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목욕도 시켜 주었다. 그것은 매우 실용적인 사상이었다.

부처가 욕장경을 설법할 때 그는 제자들이 다르마를 갈고 닦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진리의 참뜻을 찾는 행위를 목욕에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이 말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그들은 처음에 부처는 어떤 난센스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들의 처음 말과 완전히 모순된다. 그들은 점점 곤란한 지경에 빠져들었다.

욕장이란 육체를 말한다. 그대는 지혜의 불을 때고 올바른 견해의 물을 데워서 그대 속에 있는 참된 불성을 깨끗이 닦아라. 부처가 욕장경 같은 경전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도 말하자면 불성경(佛性經) 같은 경전을 말할 수 있다. 부처가 달마보다 덜 지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부처가 자신의 생각을 달마보다 덜 정확하게 말한다고 생각하는가? 부처는 승려들의 실제 생활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 욕장경을 설법했다.

그리고 일곱 가지 수행들을 잘 지킴으로 해서 그대는 덕을 쌓을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승려들은 밝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부처는 그 뛰어난 제자들에게 욕장경이라고 말했겠는가? 그 경전은 불성경이나 다른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해졌어야 한다. 왜 목욕탕경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겠는가? 그렇다면 왜 부처는 진리를 바로 말하지 않고 목욕탕경과 같은 이상한 비유를 통해서밖에 말할 수 없었단 말인가?

그들은 부처의 참뜻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부처는 뭣하러 비유를 통해서 말했겠는가?
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랐고 그들의 덕을 완성했으며 불성의 열매를 맛보았다.

부처의 제자들이 불성을 경험했다면 뭣하러 굳이 비유를 사용해서 말할 필요가 있는가? 부처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다. 비유는 오직 어린아이들에게만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달마의 제자들은 부처가 사업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제자들은 부처가 그런 사소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 경지를 헤아리지 못한다.

욕장경은 달마 당시에 쓰여진 경전이 아니다. 그 경전은 적어도 달마가 태어나기 천백 년 전에 부처가 한 말이다. 욕탕경이 하나의 비유라면 부처는 달마의 제자들을 겨냥해서 이 말을 했단 말인가? 그대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더 지혜로운가 하는 생각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현대인보다 더 예민하고 더 지성적이었는가?

바빌론의 한 석판에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매우 지혜롭다."

그 석판은 지금부터 6천 년 전의 것이었다. 부처나 마하비라도 당시에 옛날 사람들이 훨씬 지혜롭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베다}에도 이 말은 나와 있다. 네 가지 {베다} 중에 첫 번째인 {리그 베다(Rig Veda)}는 9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리그 베다}조차도 같은 말이 나와 있다. '고대의 사람들은 매우 지적이고 통찰력이 뛰어났다.'라고 말이다. 나는 그 옛날이 언제를 가리키는지 모른다. 그것은 단지 현재의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은 진화하는 것인가 퇴보하는 것인가? 이 말들에 따르면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원시적인 사람들일수록 원시적인 수행을 하고 있다. 카니발이 바로 그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에 남아 있는 몇 개의 카니발은 아직도 원시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고대인에 가깝다.

그대가 고대인들을 보려면 아프리카로 가 보라. 초기의 몇몇 기독교 선교사들이 그 카니발에 참석한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신은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는 당신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선교사가 하는 설교를 매우 즐겼다. 그리고 어깻짓으로 선교사의 말을 받아들인다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선교사들을 솥에 집어넣고는 불을 때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이 말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죠?"

그들이 말했다.
"몇 분 있으면 곧 알게 될 거요."

물이 끓기 시작하자 선교사들은 이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맛보게 해주려고 여기에 왔는데 지금 당신들은 나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국을 끓이고 있다. 그러면 처음으로 우리는 기독교의 맛을 볼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를 맛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이들은 가장 원시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금세기 초까지 3천 명의 숫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금세기 초에 그들은 3천 명이었지만 이제 3백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을 서로 잡아먹었다. 2천 7백 명을 말이다. 매일 식량은 필요했고 어쩔 수가 없었다. 간혹 외부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 날은 축제가 벌어졌다. 그들은 중국 사람도 맛보았고, 일본 사람도 맛보았으며, 독일인과 인도인도 맛보았다.

그대는 그들이 얼마나 무지하며 야만스러운지 이제 알 수 있다. 옛날 사람일수록 지적이라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그것은 어떤 역사적 근거도, 논리적 근거도 없는 말이다. 그대야말로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대는 아직 계발되지 않은 엄청난 부분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원시인들은 그대보다 훨씬 계발이 덜 되었다. 그대는 적어도 약간의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무의식적이다. 훨씬 동물에 더 가깝다.

우리의 참된 불성은 모양이 없다. 그리고 집착의 때에도 모양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들은 평범한 물로 보이지 않는 몸을 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어리석은 말을 계속하고 있다. 앞장에서 그들은 '부처는 보통 우유를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그들은 사람들이 보통 물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어디엔가 특별한 물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몸을 씻을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것은 씻을 필요가 없다. 오직 보이는 것만이 더러워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은, 허공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마음을 초월한 침묵은 결코 때가 묻지 않는다. 만약 억지로 우겨서 그것이 더러워졌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비누를 찾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샴푸가 들어 있은 병은 빈 병처럼 보일 것이다.

뉴욕의 한 가게에서 어떤 상품을 팔고 있었다. 뉴욕의 모든 여자들은 대단히 흥분했고 모두들 그것을 사고 싶어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머리 핀이었다. 그것을 사려고 상점 앞에서 여자들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머리 핀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여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가 그 상품을 사서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머리핀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점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점원이 말했다.
"보이지 않는 머리핀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군요. 내 딸애와 친구들에게도 선물하러 내일 또 오겠어요. 이건 분명히 참신한 상품이에요. 내일 와도 물건은 있겠지요? 왜냐하면 가게 앞에는 여자들이 수백 명 줄을 서 있어요. 나도 한 시간이나 줄을 서서 산 걸요."

달마의 제자들은 절대적으로 비논리적인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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