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8-17 11:45
|
20. 달마의 안심론(安心論)-2.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보라
|
|
 조회 : 4,126
|
20. 달마의 안심론(安心論)-2.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보라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보라. 이 어록이 달마 선어록의 마지막 부분임을 부처에게 감사 드린다 .나는 그들이 달마를 목욕탕으로 집어 넣는 줄 알고 매우 걱정했다. 이제 이것은 산봉우리에서 그대의 집까지 돌아오는 대단한 여행이었다. 달마는 그대를 데리고 즐겁게 돌아다녔다.
나는 보리달마란 말과 함께 시작했다. 보리달마란 달마의 인도식 이름이다. 그 뜻은 '자기 본성의 깨달음'이란 뜻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부두다르마(Buddhudharma)란 이름과 함께 여행을 끝마쳐야 한다. 부두다르마란 '자기 본성에 대해 무지함'이란 뜻이다.
그의 제자들은 달마에 대한 인상을 혼란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통찰력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을 지켜봄으로써 우리는 같은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기록한 어록의 앞부분은, 인간의 가장 깊은 잠재력에 대한 달마의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적어 놓은 어록의 마지막 장은 절대적으로 엉터리이다. 아마 그들은 대승불교의 교리에 너무 집착한 것 같다. 그들은 새롭게 입문한 불교도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무척 고심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들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들의 고충은 혁명가인 스승이 한 말과 다른 글을 기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겪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교리나 경전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항상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갈등 속에 있다. 그들은 내면의 목소리와 전통에서 나오는 말 모두를 듣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반대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극소수뿐이다. 만약 달마의 본뜻이 과감하게 기록되어졌다면, 아마도 불교도들은 그에게 어떤 경의도 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게 있어서 그는 어떤 누구보다도 더 위대하다. 자신이 경험한 진리를 계산하지 않고 과감하게 말하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그대는 욕장경이란 말을 들을 때 웃음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인도에서 힌두교에 대항하는 두 개의 혁명적인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불교와 자이나교이다. 자이나교 승려들은 결코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빨도 닦지 않는다. 그들은 목욕을 해봐야 곧 다시 더러워질 것이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자이나교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들은 본질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동의한다. 그러나 부처는 마하비라보다 좀더 예민한 것 같다. 그는 자기 승려들이 매일 목욕을 해서 항상 청결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몸은 신성한 사원으로서 존중되어져야 하며 학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부처는 항상 많은 승려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자기의 승려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었고 아플 때는 약도 주었다. 그리고 특히 목욕탕 시설도 해 주었다. 물론 그런 것은 점점 사회에 짐이 되었다.
몇 년 전 태국에서는 전 인구의 4분의 1이 승려가 된 적이 있었다. 할수 없이 태국 정부는 승려가 되려면 먼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허가 없이는 승려가 될 수 없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이다.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일도 하지 않고 어떤 생산적인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나머지 세 명은 큰 부담을 느낀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굶주린 상황에서 그것은 추한 일이다. 국민의 반수 이상이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했다. 그들은 나무 뿌리를 삶아 먹으면서도 그 나무가 살아 주기를 원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무가 죽지 않아야 꽃과 열매를 계속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사소한 일상 생활까지 일일이 말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마음대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는 자신의 제자들이 안과 밖으로 깨끗하며 항상 깨어 있기를 원했다. 그의 관심과 자비심은 너무 커서 불교 승려들에게 3만 3천 가지에 달하는 생활 지침을 말할 정도였다. 그것은 다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부처는 매일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과 음식을 구걸하는 법, 한 집에서만 음식을 전부 받지 말고 다섯 집에서 골고루 조금씩만 받을 것 등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부담은 적어진다. 그리고 한 마을에서 사흘 이상 머물지 말아야 했다. 더 이상 머무르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승려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야 했다. 가난으로 수백만 명이 하루에 한끼만 먹는데, 구걸하는 주제에 어떻게 세 끼를 모두 먹겠는가?
옷도 세 가지 이상 지녀서는 안 되었다. 이 세세한 것들이 그대가 보기에는 매우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사회에서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출가를 하면 그것은 사회에 큰 짐이 된다. 그래서 부처는 승려에게 목욕탕을 빌려 주는 것은 큰 덕행이라고 말해야 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기쁨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대가 한 사람의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그는 그대에게 어떤 빚도 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그렇게 말했다. 오히려 그대가 그를 보살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가 그대의 음식을 받는 순간 그대는 좋은 일을 했다. 그대의 몫을 그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출가하는 아기를 낳은 여인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이가 출가하도록 가르친 아버지 역시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궁극적인 잠재성을 계발하기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들을 도와 주라. 만약 그대가 자신의 잠재성을 계발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대는 다른 사람이 그것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경전이 사소하든 안 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질문을 받았을 때 약간 당황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비유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해설은 허구이다. 그 경전은 실제적인 삶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욕장경(浴場經)에는 '승려들을 목욕시키는 공덕은 무한한 축복을 받으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외부적인 덕행이 깨닫는 데 보탬이 된다는 예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마음을 지켜보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구도자들은 달마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달마는 마음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당신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는 매우 사소한 것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과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는 매우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달마는 본질적인 것만을 말하고 있지만, 부처는 본질적인 것과 사소한 것들을 모두 말하고 있다. 그는 승려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 승려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적인 수행이다. 그러나 또한 그 승려는 밥도 먹어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집도 있어야 하며, 옷도 입어야 한다."
부처는 매우 이해심이 많았다. 한 사람만 승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백만 명이 승려가 되었을 때 그들은 삶을 살아가는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승려는 자신이 무엇을 먹고 싶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지 주는 대로만 먹어야 한다. 그는 이것저것 가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일 또 올 것이라고 말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위해 값비싼 음식을 준비하게 된다. 그것은 불필요한 짐이다. 그리고 승려는 기생충이 된다.
이 모든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부처는 사소한 것까지 말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당시에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의 집에 목욕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대도시를 제외한 인도의 모든 마을에서는 9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목욕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강이나 호수에 가서 목욕을 한다. 그것이 그들의 목욕탕이며 화장실이다.
침실에 목욕탕이 딸린 집을 인도에서는 대단히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도에서는 몇몇 사람만이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나라는 매우 가난하다. 부자가 살았던 시절에도 어지간히 부자가 아니고서는 집에 목욕탕을 설치할 수 없었다.
백 년 전 미국 최고 법정에서 재판이 열렸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침실에 목욕탕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청교도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추악한 행위라고 생각된 것이다. 그 사람은 유럽에서 그것을 배웠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욕조를 가지고 갔다. 그는 대단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굉장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일은 예상과는 달리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청교도주의자들은 그런 행위는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했고, 급기야 그를 최고 법정의 재판에 회부시켰다. 법정에서는 그에게 당장 침실의 욕조를 제거하라고 판결을 내었다. 그는 욕조는 집 뒤, 한쪽 구석 지저분한 곳에 설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가 살아 있을 때에도 부자들은 집안에 목욕탕을 만들었다. 하라파(Harappa)나 모헨조다로(Mohenjodaro) 같은 유적에서 보면 집안에 목욕탕이 있었고, 그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것은 거의 7,00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자연의 재난인지 문명의 재해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재난이 그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했다. 그것도 일곱 번씩이나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종류의 재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시는 완전히 진흙으로 뒤덮여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그 위에 도시를 재건했지만 또다시 진흙에 묻혀 버렸다. 그러기를 일곱 번씩 반복하다가 결국 모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발굴단은 그 유적을 조사했다. 처음에 얇은 진흙층을 걷어내자 도시가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계속 깊이 파 보았다. 그러자 그 진흙층 밑에서 또 다른 도시가 나왔다.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일곱 번을 파 들어가서야 더 이상 도시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도시의 길은 샌프란시스코나 뉴욕만큼 넓은 도시였다. 거대한 교통 수단이 없고서야 그만큼 넓은 도로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바라나시(Varanasi)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옛 바라나시의 거리는 소형차도 지나다닐 수 없을 만큼 길이 좁다. 따라서 하라파나 모헨조다로는 위대한 문명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두 도시는 침실에 목욕탕이 갖추어져 있었고, 그 크기도 작은 수영장만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온수와 냉수가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들은 지금과 같은 문명 사회였음이 틀림없다. 아마 더 발전된 것이리라. 왜냐하면 19세기 말에 미국에서는 집 안에 목욕 시설을 마련한 사람이 범죄 행위로 지적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부처가 한 말은 비유가 아니다. 그래서 구도자들은 이렇게 물을 권리를 절대적으로 갖고 있다. "이것은 외부적인 덕행이 장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닙니까? 단지 목욕탕을 빌려 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축복을 받는다고 부처는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승려에게 목욕탕을 빌려 준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달마의 제자들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그럴 필요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 외부적인 덕행을 통해서는 깨닫는데 아무런 장점도 얻을 수가 없다. 오직 마음을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
그들은 이처럼 간단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것만이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목욕탕을 빌려 주어야 하는가?"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목욕탕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중 목욕탕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용 목욕탕을 갖고 싶어한다. 부자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은 더러운 옷을 걸친 승려들이 자신의 목욕탕을 쓰는 것을 분명히 싫어했을 것이다. 승려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더러운 발로 욕조와 바닥을 온통 더럽힐 것이다. 부자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